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
그들이 반복해서 말했다. "적어 두세요.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이해 못 했지만 그렇게라도 남겨두세요. 누군가 읽고 이해하겠죠. 나중에, 우리가 죽은 후에...." 그들은 이유 없이 서두른 것이 아니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첫날밤 원전의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대원들과 해체작업자들의 태도는 자살을 상기시킨다는 말을 들었다. 집단 자살이라고 했다. 해체작업자들은 대부분 방호복도 안 입고 일했고, 무조건 순종하며 로봇까지도 죽은 곳으로 ㅎ야했고, 그들에게 피폭된 방사선 수치를 거짓으로 알려도 그것을 받아들였으며, 죽기 전에 정부가 주는 상장과 메달을 받고 좋아하기까지 했다. 생전에 받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영웅인가, 자살자인가? 소비에트 사상과 교육의 희생양인가? 왠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조국을 구했다는 사실은 잊혀지고 있다.
사람은 자신만 구하고 나머지는 다 배반했다. 사람이 떠난 후에 군인이나 사냥꾼들이 마을로 와 동물들을 총살했다. 그럼에도 개와 고양이들은 사람으 목소리를 듣고 반가워 뛰어나왔다. 말들도 그랬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동물은, 새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 않은가? 더 무서운 것은 짐승들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우리 눈앞에서 소련이 붕괴하면서 거대한 사회주의 선박이 침몰했다. 또 다른 재난은 체르노빌이라는 우주적 재앙이었다. 두 개의 세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첫 번째 폭발은 그나마 더 가깝고 이해할 만했다. 사람들은 생계에 대해 고민했다. 돈은 어떻게 모으고, 어디로 가야 하나? 무엇을 믿어야 하나? 어떤 깃발 아래 서야 하나?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은 우리에게 낯설었고 할 줄 모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산 적이 ㅇ벗었기 때문이다. 모두 그 걱정을 했다. 한편 체르노빌에 대해서는 잊고 싶어했다. 사람들의 의식이 체르노빌 앞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다. 의식의 재난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던, 우리 가치관의 세상이 폭발했다. 만약 우리가 체르노빌을 이기거나 다 이해했더라면 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은 책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우리와 우리의 의식은 각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현실은 사람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스쳐지나가기만 한다.
나이 많은 간호사가 해준 말이 기억 난다. "고칠 수 없는 병도 있지. 그럴 땐 옆에 앉아 손을 쓰다듬어 줘야 해." 37
"남편, 아들 시신의 방사선 수치가 매우 높기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모스크바의 묘지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매장할 것입니다. 밀폐된 아연관에 안치해 콘크리트로 덮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서에 서명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이에 반대하거나 시신을 고향으로 가져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꼭 아셔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사망자들은 국가의 영웅이기에, 시신은 절대 가족의 것이 아닙니다." 이제 국가의 사람이었다. 국가의 소유였다. 46
아기를 나에게 보여줬다. 여자이였다. "나타셴카!" 내가 불렀다. "아빠가 너를 나타샤라고 이름 지었더." 겉으로는 손도, 발도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간 경화증에 걸린 아이였다. 간이 28뢴트겐에 노출된 상태였다. 그리고 선천성 심장병도.... 4시간 후, 딸이 ㅈ구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시신을 줄 수 없다고 했다! " 무슨 말이에요, 줄 수 없다니? 나야말로 줄 수 없어요! 연구 때문에 데려가는 거잖아요! 나는 장신들 연구를 증오해요! 증오해요! 그놈의 연구 때문에 남편을 앗아가더니, 이제는... 절대 안 돼요! 내가 직접 묻을 거에요. 남편 옆에...." 48-49
나는 이렇게 산다. 현실과 비현실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어디가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일어서서 창가로 간다) 이 동네에는 우리 사람들이 많이 산다. 그래서 체르노빌스카야 거리라고 부른다. 이들은 평생을 방전소에 바쳤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돌아가면서 그곳으로 가고, 당직을 정해 발전소를 관리한다. 그곳은 아무도 살지 않고, 살지 않을 땅이다. 사람들은 심각한 질병과 장애를 앓지만 하던 일을 버리기는 커녕 그런 생각조차 없다. 원자로가 그들의 생명이다. 인제 와서 누가 그들을 원하겠는가? 계속 죽고, 갑자기 죽는다. 길가다가 쓰러지고, 잠들고는 깨어나지 않는다. 간호사에게 꽃을 가져가다 심장이 멎는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그렇게 죽어가는데 우리가 무엇을 견뎌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아무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무서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한 사랑에 대해.... 52
아주머니들이 어린 우리를 목욕탕에 데려가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여자의 자궁이 떨어져나와서 천조각으로 잡아맸다. 나는 그것을 봤다. 중노동 때문에 자궁이 흘러내린 것이었다. 우리는 그게 뭔지 그 나이에 벌써 알았다. 57
내 슬픔이 어떤지 알겠어? 사람들에게 알려줄 때쯤이면 나는 죽고 없을 수도 있어. 땅속에 있겟지. 뿌리 아래에서... 65
밤에는 하나님께, 낮에는 경찰한테 빌어. 내가 왜 우는지 물어봐도, 나도 왠지 몰라. 내 집에 살아서 기쁜데 말이야. 77
사람들이 많이 와. 우리에 대해서 영화도 찍었는데 우리는 평생 그 영화를 못 보겠지. 텔레비전도, 전기도 없으니까. 볼거리라고는 창밖 풍경뿐이야. 물론, 기도도 하지. 한 때는 신 대신 공산당원이었는데, 이제는 신만 남았어.
우리는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이야. 1년을 파르티잔에 있었지. 그러다가 우리나라가 독일을 물리쳤을 때, 전쟁에 나갔어. 독일 의회 건물에 '아르튜센코'라고 내 성을을 써놨지. 제복 외투를 벗은 후에는 공산주의를 세웠어. 그런데 그 공산주의는 어디로 갔나?
여기가 바로 공산주의지. 다같이 호형호제 하면서 살아. 81-2
우리에겐 고향이 없어요. 돌아갈 곳이 없어요. 독일인들은 다 독일로 돌아갔고, 타타르인은 허락을 받고 크림으로 갔지만, 러시아인을 반기는 곳은 없어요. 희망이 있기라도 하나요? 뭘 기다리죠? 러시아는 너무 크고 광활해서 자국민을 구해준 적이 없어요. 솔직히, 내 고향이 러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러시아식으로 자라지 않았어요. 우리 조국은 소비에트 연합이에요. 어디로 가야 살 수 있을지 몰랐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총소리가 안 들려요. 그것만으로도 좋아요. 97
내게도 한때 고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없어요. 어디 사람이냐고요? 엄마는 우크라이나인이고, 아빠는 러시아인이에요. 키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나 자랐고, 타타르 남자에게 시집갔어요. 내 아이들은 누구일까요? 어느 민족일까요? 우리는 다 섞였어요. 우리 피가 다 섞였어요. 나와 내 아이들의 신분증에는 러시아인이라고 쓰여 있지만, 우리는 러시아인이 아니에요. 우리는 소련인이에요! 하지만 내가 태어났던 나라는 이제 없어요. 우리가 고향이라고 불렀던 곳도 사라졌고, 우리 고향이었던 시간도 이제 없어요. 우리는 지금 박쥐 같아요. 103
우리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숨길 수가 없었다. 아마 3~4년이 지나 하나, 둘 아프기 시작하고, 누군가 죽고, 미치고, 자살했을 때... 그때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실은, 아마 20-30년 후에야 알게 될 거다. 2년을 보낸 아프가니스탄과 3개월을 지낸 체르노빌은 내 삶의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 116
집으로 돌아왔소. 그곳에서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쓰레기통에 던졌소. 막내아들이 졸라서 군모를 줬소. 아들은 절대로 벗지 않고 매일 쓰고 다녔소. 2년 후 아들은 뇌종양 진단을 받았소. 나머지는 알앙서 쓰시오. 더는 말하고 싶지 않소... 117-8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체르노빌에서는 정 반대였다. 집에 가면, 바로 그때 죽는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119
어쩌면 아무도 진실을 모르도록 없애버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증인이야. 하지만 우리는 곧 죽어. 우리가 의사한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몇 뢴트겐인지만이라도 알면 좋겠다. 얼마나 쏘였는지 그 나쁜 년한테 보여줬을텐데... 어떻게든 살아 남아서 결혼하고 애도 낳아서 보여주고 말 테다. 127
한 교수가 비밀리에 조언을 해줬다. "따님의 병리현상은 학문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외국 병원에 편지를 보내 보세요. 분명히 관심을 보일 겁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냈다. (울음을 참는다) 30분마다 손으로 눌러서 소변을 배출시켜야 하는데, 소변이 질 쪽에 있는 점만한 구멍으로 흘러나온다고 편지에 썼다. 이렇게 안 하면 하나밖에 없는 신장도 고장나기 때문이다. 30분마다 오줌을 손으로 짜내야 하는 아이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더 견뎌낼 수 있을까? (운다) 나는 울음을 참는다. 나는 울면 안 된다. 문마다 두드렸다. 편지를 보냈다. 실험이 목적이라도 내 딸 좀 봐주세요. 연구때문이라도 데려가 주세요. 내 딸이 살 수만 있다면 실험용 개구리나 토끼가 되어도 괜찮아요. (운다) 137
왜 체르노빌에 대한 글이 없을까? 우리 작가들은 아직도 전쟁과 스탈린의 수용소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책이 한두 권 있고, 더는 없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사건은 아직 우리 문화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141-2
아무도 방사선 수치를 확인하지 않았소. 정상적인 러시아식 카오스였지. 우리는 이렇게 사는 거요. 뭔가 베끼고, 팔아버리고. 징그럽기도 하면서, 그냥 다 꺼져 버리라고 하고 싶네.
방송국 기자가 우리랑 같이 왔어요. 기억 하세요? 카메라 들고 왔잖아요. 울더라고요. 남자가.... 그런데 울면서도 머리 셋 달린 돼지가 보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156
선생님도 다시 뵙고 싶어질지는 모르겠어요. 왠지 그가 나를 보던 것처럼 나를 관찰하시는 것 같아요. 구경하시는거잖아요. 잘 기억해 두려고. 우리를 대상으로 무슨 실험을 하시나봐요. 다들 재미있어해요. 그런 느낌을 떨쳐낼 수 없어요. 그런데 왜 그게 죄가 되는지 아세요? 아이를 낳는 거 말이에요.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게 없잖아요.
행복하고 싶은게 잘못인가요. 165
지식과 규율, 그 두 가지야말로 우리가 가장 낮게 평가하는 미덕이에요. 우리는 맨 가슴으로 총을 막고 횃불을 들고 질주하는 민족인데, 버섯을 적시고 감자가 끓으면 물을 따라내라니, 규칙적으로 비타민을 복용하라니, 연구실에 검사하러 열매를 가져오라니, 재를 땅에 묻으라니...225
누구는 집에 아이들을 두고 왔고, 누구는 아내가 곧 출산하고, 누구는 집에 없었다. 푸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하라고 하니 해야되는 것이었다. 조국이 부르고 조국이 명령했다. 우리가 이런 민족이다. 270
그리고 우리가 영웅이라는 말을 크게 강조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땅을 열심히 판 살마에게는 대열 앞에서 표창장을 수여했다. 소비에트 연방 최고 매장인이라는 명칭과 함께... 이것이 미친 행동이 아니면 뭔가? 273
우리가 어떤 삶에 익숙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온 마을이 같이, 공동체로 살았어요. 공장이든 농장이든 단체로 살았어요. 우리는 소비에트 사람이었어요. 저도 소비에트 사람이었어요. 그것도 아주 소비에트 사람다운 소비에트 사람이었어요! 284
시골 사람들이 제일 불쌍해요. 그들은 아이처럼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고통을 당했어요. 체르노빌은 농부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에요. 100년, 1천년 전과 같이 농부는 자연과 서로 신뢰하는 특별한 관계였지, 약탈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과학자나 배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치 성직자를 신뢰하듯 믿었어요. 그런 그들을 기만헀죠. "다 괜찮아. 무서울 거 없어. 밥 먹기 전에 손만 씻으면 돼." 그때는 몰랐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 모두가 그 범죄에 가담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287
우리 후에는 역사만 남을 거에요. 체르노빌만 남을 거에요. 그런데 내 삶은, 내 사랑은 어떻게 되나요? 297
버스에서 30분동안 아무 말도 안 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어난 일에 대해 서로 소리 내서 말하기 무서웠던 것입니다. 각자 주머니 속에 당원증이 있었으니까요. 303
우리 기억을 붙들고 의지하오. 기억도 우리가 사는 만큼 살 것이오. 그렇게 받아 적으시오. 318
우리 벨라루스 사람들은 한 번도 영원한 것을 가진 적이 없다. 우리 땅조차도 영원하지 않았다. 항상 누군가 그 땅을 뺏아 갔고, 우리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의 구약에서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은 것처럼 영원히 살 수 없었다. 쇠사슬과 쇠고랑. 우리는 그 영원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영원과 더불어 사는 방법도 모른다. 영원에 의미를 부여할 능력이 없다. 그런데 드디어 그 영원이 주어졌다. 우리의 영원은 체르노빌이다. 영원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는 웃는다. 337
우리에게는 체르노빌이라는 결정체가 있다. 체르노빌은 우리로 뭔가를 만들고 있다. 창조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민족이 되었다. 체르노빌 민족. 이제는 단순한 길이 아니다. 러시아와 유럽을, 유럽과 러시아를 잇는 길이 아니다. 드디어.......
예술은 기억이다. 우리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기억이다. 나는 무섭다. 한 가지가 무섭다. 우리 삶에서 두려움이 사랑을 대신해버릴까 무섭다. 339
"노동절을 망칠 속셈이오?" 정치적인 문제였다. 당원증을 반납해야 할 수도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린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정말이다. 정부 위원회 의장 세르비나가 사고 직후에 발전소를 방문해서 사고 현장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고 들었다. 341
나중에는 이미 늦었다. 올렌카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다. 아이가 아침에 잠에서 깨더니 말했다. "엄마, 내 꿈에서 천사가 날아와 우리 언니 데리고 가는거 봤어. 우리 언니가 거기서 잘 지낼거래. 아무 데도 안 아플 거래. 엄마, 우리 언니를 천사들이 데려갔어..." 356
하지만 아무도 우리 말을 안 들었다! 우리 의학자, 의료인들의 말을...과학은 정치를 섬겼고. 의학도 정치로 끌어들였다. 당연지사였다! 10년 전 사고 당시 우리 사회가 어떠했는지, 우리가 어떤ㅅ ㅏ람이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비밀수사기관인 KGB가 활동헀다. '서쪽의 음성'은 꺼뜨려졌다. 금기사항, 당과 군사의 기밀이 수천 가지였다. 훈령이 흘러 넘쳤다. 거기다가 모든 사람이 소비에트의 평화적인 핵은 이탄이나 서탄만큼 안전하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우리는 두려움과 편견, 미신으로 억압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사실, 사실만이... 358-9
반 년 후에 세 번째 수술을 하기로 했어요. 안드레이는 자기 허리띠로 목을 매었어요. 모두 체육 수업에 가고 없는 텅 빈 교실 안에서. 의사 선생님께서 안드레이한테 뛰지도, 달리지도 못하게 하셨는데, 안드레이는 학교에서 축구를 제일 잘했어요. 수술, 수술 전까지는...
여기에는 친구가 많이 있었어요. 율랴, 카탸, 바딤, 옥사나, 올레크, 그리고 지금은 안드레이. "우리가 죽으면 학문이 될 거야." 안드레이가 말했어요. "우리가 죽으면 우리를 다 잊을 거야." 카탸는 이렇게 생각헀어요. "내가 죽으면 묻머에 묻지 마. 나는 무덤이 싫어. 거기에는 죽은 사람들이랑 까마귀밖에 없잖아. 나는 들판에 묻어 줘." 옥사나가 부탁했어요. "우리는 죽을거야..." 율랴가 울었어요.
이제 하늘을 보면 하늘이 살아 있어요. 내 친구들이 거기 있으니까.. 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