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stri.destride 2015. 11. 6. 15:30

다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싶다. 내 공간을 침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 내 본능이고 솔직한 욕망이다. 누구는 세상으로부터 전면적인 인정, 사랑, 존경을 받고 싶어하고 누구는 세상에 전면적으로 헌신하고 싶어하지만 누군가는 광장속에서 살기 힘든 체젤이기도 하다. 그걸 죽어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냥 레고에는 여러 모양 조각들이 있는 거다. 19


세상은 완고하고 인간은 제각기 어리석다. 의미를 따지지 말고 자기만족이든 뭐든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는데. 20



이 사회를 지배해온 것은 그 무엇보다 집단주의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의 청년기에, 독재에 대항한다는 학생운동세력 역시 '의장님을 목숨으로 보위하자'는 수준의 전체주의적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투사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후배들에게 직장에의 헌신을 강요하는 꼰대로 변신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36


잘 나가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서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그다음부터는 탈락의 공포에 시달린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37


세상을 아군과 적군, 정의와 불의로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방적인 기대심리를 투영하여 과잉 열광하거나 족므이라도 자기 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면 배신자 취급을 하며 돌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 하루하루를 분노, 절망, 투쟁, 당위만으로 채우는 것을 신성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불행하다. 그리고 그들이 이끌고 가는 곳에 행복한 유토피아가 있을 리 없다. 나는 소박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채워가는, 그러면서도 마음이 가는 일에는 주저 없이 자기 힘닿는 범위에서 참여하는 이들이 이끄는 곳으로 가고 싶다.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비극이 가득했지만, 그 어떤 불행한 시대에서도 인간이 행복하고자 하는 것은 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62



당시 대학가를 지배했던 이념은 '사회과학'이라는 중립적인 표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마르크스주의였다. 사회과학 서점에 있는 대부분의 책이 이 시각으로 사회, 경제, 역사, 문화, 교육 등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냉철하게 파헤치는 측면에서는 탁월했다. 아름다운 말로 포장된 인간사회 구조의 곳곳에 탐욕과 이기심, 지배와 피지배 구조가 있다는 걸 일깨워주었다. 의문점은 그렇게 냉철하고 날카롭고 실증적이던 비판의식이 대안 제시 단계에서는 갑자기 종교 수준의 낙관주의로 돌변한다는 점이었다. 인간이 그렇게 역사 내내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웠다면 어떻게 갑자기 노동계급에 대한 헌신과 희새엊ㅇ신에 불타는 전사로 돌변하며, 당(즉 지배 엘리트)은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은 채 인민을 위해 헌신하고, 사람들은 사유재산과 이윤 동기 없이도 모두를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말인가. 그게 근본적으로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지 과학적인 설명이 너무나 부족했다. 99-100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고 답한다. 일본이 지금보다 더 심각한 격차사회, 계급사회가 되면 역설적으로 행복지수 자체는 올라갈 수도 있다. 일본 젊은이들은 고도 성장기의 버블이 다 꺼진 지금,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별로 없기 때문에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일본이든 우리든 지난 시대의 기준을 들이댄 '세대론'으로 현재를 완벽하게 설명하려 드는 건 어리석다. 처한 입장의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다른 다양한 개인들을 '세대'라는 카테고리로 묶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이십대를 괴물이 되어버린 세대로 보는 것도, 모든 것에 달관한 세대로 보는 것도 모두 성급하게 느껴진다. 117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수치를 모르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128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136



당사자의 고통을 경청한다. "어느 부분이 제일 억울하세요?" 긍정적 분위기를 만든다. "잘 해결될 겁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믿음을 준다. "저는 원고도 모르고 피고도 모릅니다. 사건을 상세히 말슴해주시면 제가 올바르게 판단하겠습니다." 당사자는 이성적이기 힘들다. 분쟁에서 감정을 분리하고 얽매여 있는 명분을 내려놓도록 설득한다. 당사자의 주장에 대해 '그러나'로 답하기 보다는 '그리고'로 답한다. 조정 전날 밤에는 꼭 기도한다. '고통 받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주소서.' 171-2 



아름다운 윤리와 당위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인간의 이기심,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일단 ㅇ니정하고 그걸 출발점으로 타협할 지점을 찾는 냉정함이 현실적ㅇ디ㅏ. 세상이 복잡하다고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신념과 분노에만 의지하다가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도 최악의 결과만 가져올 수 있다. 204



순수해서가 아니라 이미 바닥을 충분히 보았기 때문이지만. 237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보다 더 낫다고 남보다 더 많이 안다고 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을 비웃지 마라 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