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대 고통의 한복판에서, 당대비평 2005 신년특별호, 생각의 나무
현장의 여성들은 구출이나 단속의 대상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협의의 대상으로 인식되지는 못했습니다. 33
대부분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당장의 목표와 성과가 너무나도 시급하고 절박하기 때문에 그 안의 민주적인 논의 과정이나 활동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들을 곧잘 합니다. 그러나 김 군, 그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그 주장의 논리가 혹여, 가난이 급하다고 유신독재를 정당화 했던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논리와 비장애인도 힘들다고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를 외면하는 국가 관료들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면 너무 과격한 주장이겠습니까? 49
감옥이야 극단적인 경우지만, 근대 국가의 아주 좋지 않은 성질 중 하나는, 혼자 있고픈 사람을 절대 혼자 두지 않는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군대에 끌리고 학교에 의무적으로 보내지고, 싫든 좋든 배고프지 않기 위해서 직장이라는 조직체에 하루의 상당부분을 바쳐야 합니다. 게다가 텔레비전, 광고, 끊임없는 차 소리 등은 늘 우리의 감각 기관을 긴장의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우리를 국가나 자본에 부속시키는 뭔가가 마음의 집중을 계속 방해하는걸 '역사적인 사명'으로 삼는 것입니다. 60
대다수의 과학기술자들은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과학기술자들은 후속 세대를 교육하고, 대중적인 글을 쓰고 강연을 하기도 하며, 기업의 자문도 하고, 의회와 정부의 위원회에 소속되어 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54
여성시대가 도래했다는 진단은 일부 성공한 여성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여성들의 곤혹을 개인적 결함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구조를 은폐한다. 182
한국인들은 대단히 종교적인 사람들이 되기 쉽다. 이 같은 집단적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들이 있지만, 나는 그런 경향에 대해 조금은 단순한 이해를 갖고 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극도로 열정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면 모든 에너지를 그 일에 쏟아 부어, 전부가 아니면 얻을 게 아무것도 없는 하나의 도전으로, 혹은 일종의 사활을 건 딜레마로 본래 상황을 바꾸어 놓기까지 한다. 이에 대한 증거를 찾기란 쉬운 일이다. 그저 어떤 교회 안으로 들어가 큰 목소리로 '아멘'을 외치는 기도자의 열정을 보라. 신의 입장에서도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런 목회자를 보고 듣기란 어려울 것이다. 187
그러나 열정은 결코 홀로 거주하는 법이 없다. 그것은 과잉과 짝을 이루어 함께 거주한다. 열정과 과잉은 한국 사회에 무성하다. 그러나 정치적 과잉이 증대하게 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번영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경우에 열정적 신념은 타인의 신념과 의견에 대한 멸시로 돌변했고, 건전한 회의주의보다는 냉소주의가 한국 민주주의를 지배하고 있다. 189
기억의 혁신은 거의 언제나 틈새 속에서 일어난다. 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