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송은경 옮김
그 당시 마셜 씨의 위대함을 흉내 내려고 경쟁적으로 애쓰던 소인배들이 피상적인 것을 본질로 착각했던 것이다. 47
따라서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이 단정하고 싶다. 즉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읫 ㅣㄹ존을 포기하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집사로 산다는 것은 무슨 판토마임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슬쩍 밀거나 약간만 비틀거리게 만들어도 가면이 떨어져 내려 가면 뒤의 배우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는 점에서 말이다. 58
자신이 봉사해 온 세월을 돌아보며, 나는 위대한 신사에게 내 재능을 바쳤노라고, 그래서 그 신사를 통해 인류를 위해 봉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다. 149
"단지 그 이유만으로 루스와 사라를 해고한다는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도 안 드나요? 스티븐스 씨? 전 그런 일에 찬성할 수 없어요.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집에서는 일하지 않을 겁니다." 183
"으흠, 그렇게까지 말하기는 좀 그렇고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뭐랄까, 정치적 양심 같은 것들이 있어요. 해리가 선동하고 다니는 것처럼, 이런저런 사안에 확고한 견해를 가지는 것을 무슨 '의무'처럼 생각하지요. 그러나 실상 다른 고장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요. 주민들은 조용한 삶을 원합니다. 해리는 갖가지 변화들을 수없이 구상하고 있지만 사실 마을 주민 누구도 풍파가 이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설사 그렇게 해서 자기한테 이득이 온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저 조용히 소박한 삶을 이어 가도록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게 주민들의 바람이죠. 이 문제 저 문제로 시달리고 싶지 않은 겁니다." 259
원래 2009년에 나온 책이었는데, 모던 클래식으로 다시 나오는 거였구나. 개인적으로 민음 모던 컬렉션 찾아 다니는 사람으로선 민음의 전략이 굉장히 좋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다.
끊임없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한 집사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