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체크, 당통의 죽음, 게오르크 뷔히너 지음, 홍성광 옮김, 민음사
보이첵 뮤지컬을 보고 아쉬운 마음 > 기쁜 마음이 들어 원작을 찾아봤다. 뮤지컬 도입부는 영화랑 거의 똑같다고 그랬고..책은 뮤지컬과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 아마 뮤지컬이 원작보다 각색이 훨씬 많이 된 듯. 뮤지컬은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버렸지만 원작에서는 보이첵도 마리도 그렇게 '착한' 주인공들은 아니다. 뮤지컬 연출가는 모두 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는데 그랬더니 오히려 원작을 본 사람들이 화가 나는 결과가 연출됨.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파멸하는 뮤지컬이 한국에서 연출되는 점이 좋아서 그 점은 맘에 들었고, 뮤지컬 무대랑 음악은 좋았는데 스토리라인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프리실라보다는 짜임새 있는 연출. 같은 장소 (엘지아트센터)에서 했는데 프리실라보다는 무대가 덜 비어보였음.
뷔히너는 처음으로 '열린 결말'을 갖는 희곡의 짜임새를 만든 사람인데, 이런 뷔히너가 뮤지컬 보이첵을 보면 심기가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 뮤지컬 보이첵에서는 보이첵이 한없이 선량하고 안타까운 사람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악랄해 보였지만 원작에서는 보이첵도 그냥 나약한 사람 중 한 명 정도.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이라도 읽고 읽어야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신사: 기괴해! 너무 기괴해!
대학생: 당신도 무신론자입니다! 나는 교조적인 무신론자입니다. 그게 기괴한가요? 나는 기괴한 것의 친구입니다. 저기 보이죠? 얼마나 기괴한 효과를 냅니까? 난 교조적인 무신론자입니다.
신사: 기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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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버리 장사치: 이 녀석은 인간이고 사람이며짐승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짐승은 짐승이군요. (말이 제멋대로 행동한다.) 자, 그럼 인간 사회를 창피하게 해 주렴! 보십시오. 이 녀석은 아직 자연 그대로의 모습, 이상적이지 않은 자연입니다! 이 녀석한테서 배우십시오! 하지만 의사한테 물어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인간이여,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는 먼지, 모래, 똥으로 만들어졌는데, 먼지, 모래, 똥 이상이기를 바라는가? 이성이 뭔지 보십시오. 이 녀석은 셈을 할 수 있지만, 손가락으로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자신의 의사를 피력하지 못해, 설명하지 못할 뿐입니다. 모습이 바뀐 사람입니다. 21
보이체크: 제기랄! 그 녀석 여기에 서 있었지?
마리: 날은 길고 세계는 오래 지속되지. 수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서 있을 수 있어, 한 사람씩 차례대로.
보이체크: 내가 그 녀석을 봤단 말이야!
마리: 두 눈이 있고 장님이 아니며 태양이 비친다면 뭔들 못보겠어.
보이체크: 이 두 눈으로.
마리: (천연덕스럽게)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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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리: 당신은 날 믿어?
당통: 내가 뭘 알겠어? 우린 서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어. 우리는 둔해. 서로에게 손을 뻗어 보지만, 부질없는 일이야. 그저 거친 가죽만 비벼 댈 뿐이지. 우린 무척 외로워.
쥘리: 당신은 나를 잘 알아, 당통.
당통: 그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식으로는 알지. 이 까만 눈, 곱슬머리, 고운 혈색. 그리고 나에게 늘 '사랑해 , 당통' 하고 말하지. 하지만 (쥘리의 이마와 눈을 가리키며) 여기, 여기, 이 안에는 뭐가 등러 있지? 그만둬. 우리 감각은 무뎌. 서로를 잘 안다고? 그러려면 서로의 두개골을 열고, 뇌의 섬유 조직에서 생각을 끄집어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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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피에르: 가난하고 덕을 갖춘 민중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 의무를 다했고, 적을 물리쳤습니다. 민중들이여, 여러분은 위대합니다. 여러분은 번개가 치고 천둥ㅇ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숭고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민중 여러분, 여러분이 휘두른 칼에 여러분 자신이 다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분노에만 싸여 있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힘에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적은 이 점을 잘 압니다. 여러분의 입법자들은 깨어 있어 여러분 손을 잡고 이끌 겁니다. 그들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여러분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자코뱅파로 갑시다! 여러분의 형제들이 두 팔을 벌려 여러분을 반갑게 맞이할 겁니다. 우리는 적들에게 피의 심판을 내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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