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간만에 만난 훌륭한 독일 풍의 과학 교양서
이런 이력에 비춰 보면, 인생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희망임이 드러난다. 훗날의 최고 과학자들을 이끈 것은 긴 안목의 생각이 아니라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자신감이었다.
이 용기를 그들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용기는 신에게 도전하겠다는 뻔뻔함이 아니라 평생 기꺼이 앎을 찾아 헤매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내가 만난 과학자들은 고유한 개성과 함께 이 마음 가짐을 드러냈다. 불확실성은 최소한 앎만큼 강하지만, 특별한 자아는 그런 불확실성을 누리는 호사를 감당할 수 있다. 자만심 너머, 획기적인 연구 결과로 자신의 이름을 불멸의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바람 너머에서 어떤 추진력이 그들을 움직이는 듯했다. 그 추진력은 길 위에 있는 기쁨, 사람은 끝내 안주하지 못함을 정확히 아는 기쁨인 듯했다. 18
감각지각보다 훨씬 더 결정적인 것은 대상에 어떤 관심을 기울이느냐 하는 거에요. 아름답다는 느낌은 당신의 지성과 대상 사이의 긴장에서도 나와요. 하지만 당신의 지적도 일리가 있어요. 관심도 어디에선가 유래해야 할 테니까. 출발점은 늘 감각적 끌림이겠죠. 26
질서나 무질서 하나만 가지고는 미적 감흥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아름다움은 긴장에서 나와요.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긴장, 단순함과 복잡함 사이의 긴장. 32
내가 보기에 미술관 관람의 즐거움은 나의 감각 경험과 지성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작품에 다가가는지 느끼는 것에 있어요. 나는 나 자신의 내면세계가 통일되어 있음을 실감해요. 그뿐 아니라, 내가 나를 둘러싼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요. 그러면서 인간의 좋은 면을 새삼 깨닫죠. 34
나는 내 실험실 동료가 지금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항ㅅ아 좋았어요. 동료가 아무 말 안해도 알아챘죠. 그리고 바로 그 문제를 내가 해결해줬고요. 이 특별한 공감의 재능은 어쩌면 내가 전쟁을 겪은 덕분에 얻은 것인지도 몰라요. 유난히 남의 호감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어린 시절에 끔찍한 일을 겪은 경우가 많아요.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은 아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부모의 이혼을 겪은 아이는 세상의 나쁜 일이 자기 잘못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보여주고 싶어 하죠. 자기가 좋은 아이라는 걸. 45
자신이 더 큰 실재 속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이감. 이것이 과학과 종교가 공유하는 근본 동기 잖아요. 66
기억이 부서질 수도 있나요?
아뇨. 하지만 기억과 전혀 다른 현실을 대면하는 일은 몹시 고통스러울 수 있어요.
(중략)
그래요,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죠. 하지만 당신의 말이 옳아요. 현실을 볼 때 우리는 기억의 색조가 드리운 현실을 볼 수밖에 없어요. 무슨 말이냐면, 뇌에 새로 들어온 모든 신호는 곧바로 이미 저장되어 있는 정보와 비교되거든요. 우리는 늙을수록 무언가에 감동하기가 더 어려워지는데, 그 이유 중에 얕잡아 볼 수 없는 하나가 바로 이 비교 과정이에요. 86-7
명성은 환상이에요. 현실의 과학에서 개인은 아무 역할도 못합니다. 실험실에는 어떤 개인의 서명도 적혀 있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이러이러한 실험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으면, 한두 달 뒤에 다른 사람이 그 실험을 해요. 90
과학자가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되나요? 강력한 개인적인 믿음은 특정한 방향으로 단호히 나아갈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129
하지만 보살핌을 받은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보답을 합니다. 반면에 말벌은 아무 보답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말벌을 보살피면, 참된 헌신을 배우게 돼요.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이 자연과 친해지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134
그런 식으로 돈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확실히 틀린 방향입니다. 급여는 중요한 자극 요인이지만 유일한 요인은 아니거든요. 개인적으로 나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훨씬 더 많이 움직인다고 믿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못난이로 낙인 찍혀 업신여김을 받는 상황을 가장 싫어하지요. 우리에게는 이런 상황을 피하는 것이 급여를 조금 더 받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급여는 보장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서 하는 얘기지만요. 153
행복이 사적 재화라면, 정의는 공적 재화입니다. 당신은 개인으로서 당신의 행복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혁명과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지요. 반면에 정의를 얻으려 한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싸워야 합니다. 157
사디스트는 상대방의 고통에서 쾌락을 느끼죠. 그렇다면 사디스트는 상대방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에요 사디스트는 바로 상대방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기 때문에, 쾌락을 느낍니다. 공감과 이타심은 전혀 별개예요. 195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심한 마조히즘 놀이에도 '열쇠말'이 있어요. 마조히스트 역할을 하는 사람이 그 열쇠말을 발설하기만 하면 노링는 곧바로 끝나요. 그러니 불안이 있을 리 없죠. 통증은 불안을 ㄷ롱반할 때 비로소 견디기 힘들게 됩니다. 214
여러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만성적으로 지나치게 낙관적입니다. 실제로 경미한 우울증 환자가 더 현실적일 때가 많아요. 물론 우울증으로 인한 비용이 커서 문제이긴 하지만요. 268
여기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기반을 캐묻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데, 이것이 그 불안과 관련이 있어요. 충만한 삶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같은 질문을 깊이 숙고하지 않죠. 다들 행복에 대해서 말하지만 아무도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요. 276
한때 사람들은 자신을 우주적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여겼어요. 우리가 창조되었고 죄를 지었고 구원받는다고 믿었어요. 참으로 거창한 이야기였죠. 반면에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오히려 어떤 대본도 없이 무대 위에서 어슬렁거리는 배우에 더 가깝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여기 저기에서 즉흥으로 드라마도 조금 지어내보고 코미디도 조금 지어내보는 것뿐임을 깨닫는 중이죠. 나는 이것이 상실이라고 느낍니다. 3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