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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7
stri.destride
2014. 7. 27. 03:55
'청년'이라는 단어로 왜 세대를 분리하는지 잘 모르겠다. 청년의 욕망은 과연 그 이전 혹은 이후 세대 사람들과 다른 욕망일까
예전에 회의하러가다가 연남동에 동진시장이라는게 하고 있어서 들어갔는데 친환경 농산물을 팔고 있었다
여러 야채를 팔고 있었는데 ... 근대야 뭐 국끓여먹는다고 치고, 수리취가 있었는데 떡을 해먹는건 알았지만 다른걸로 해먹을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파는 사람이 나에게 '나물 무쳐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사실 저도 잘 몰라요 인터넷 찾아보면 나올거에요'라고 했다. 나야 뭐 집에 엄마가 있고 엄마가 밥을 하니까 엄마한테 갖다주면 엄마가 잘 하겠지 싶어서 갖고갔는데 엄마가 떡 말고는 해먹을게 없다고 그랬다 ㄷㄷ
수리취를 파는 사람도 내 또래였는데 ... 아마 청년이 생각하는 '마을 공동체'라는 것도 결국 이런 식의 '흉내내기'만 가능한거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아주 어릴 때 이후로는 계속 아파트에서 자랐고 이웃들하고 친하게 지낸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는 데에 꽤 미숙한 사람이다. 이제서야 사람들 생각이 서로 다르고 그것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한거라는 생각을 겨우 해냈으니 정말 느려도 느린 편.
결국 수리취는 해먹을 일이 없어서 버렸다. 친환경 농산물을 파는 곳에서 왜 야채 시들시들 해지게 비닐 봉투에 소분해서 팔고 있었을까? 그게 판매하기 편한 방식이니까 그랬을거다. 결국 모든게 엉터리라는 생각만 자꾸 든다. 자기가 기르는 동물은 예뻐서 죽는 사람들이 2-30대 아이를 둔 여성들이 카카오스토리 하는 패턴을 따라하면서 비꼬면서 논다. 애초에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할 마음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무슨 활동을 하는건가 싶어서 가끔씩 궁금하다. 나도 이제 입 그만 다물고 이야기를 해나가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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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가끔 고등학교 자퇴를 하고 입시학원을 다녀서 입학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학교라는 공간을 싫어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나는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학교가 크게 재미없긴 했어도 싫지는 않아서 계속 다녔다. 집에서는 학교 그만두고 집에서 놀자고 그랬는데 학교가 사실 더 재밌어서 열심히 나가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때는 학교라는 곳에서 집단에 속해 미움 받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익혔던 것 같고..싫은 선생님도 있었고 좋은 선생님도 있었다. 나는 싫어하는 표현을 잘 하지 못해서 나중에 갑자기 어설픈 싸움꾼이 되었던 것 같다. 싫다는 말을 애초에 할 수 있었더라면 무리한듯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내가 학교를 거부하지 않았던 건 사실 내가 음 학교에서 공부를 못한다고 면박 당한적이 없어서일수도 있고 나 자신이 이런 재미없는 상황의 원인을 학교와 선생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듯도 하다. 영어 교과서 본문은 너무너무 재미없었지만 가끔 재밌는 내용도 있었고, 나는 교과서에 써있는 말들을, 내가 처음 배워나가는 지식들이 참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교 1학년때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영어 빼고..) 한자 배우는게 재밌어서 열심히 써서 외웠고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새로운 단어들이 좋아서 재밌게 외웠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나는 재밌었고 교칙을 지키는 편이었지만 배아프다고 거짓말 하고 땡땡이 치고 나가 논 적도 있었고 조퇴하고 친구 집에서 라면 끓여 먹은 적도 있었다. 교복이 너무 커서 맘에 안들어서 줄여서 입고 다니기도 했다. 고등학교때도 교복 줄이고 치마 주름 다 뜯어서 다시 박아오라고 그러면 박아온 다음에 며칠 뒤에 다시 뜯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 선생님들이 이상한 말을 하면 이상하구나 하고 걍 넘겼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계속 다녔던걸까?
나중에 대학 붙고 나서 학교 근처에 갈일이 있어서 잠깐 들렸더니 선생님들이 다 내가 성적이 최상위권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어서 몹시 당황했다. 입시 발표하고나서 인트라넷에 떴을때 선생님들이 너무 놀랜건지 뭔지..나보고 수능원서 다시 쓰러 왔냐고 한 사람은 내가 맨날 쳐잤던 지구과학 선생님 뿐이었다. 학교가 그렇게 싫진 않았다. 학교 도서실도 좋았고 학교를 옮긴진 얼마 안되었으나 학교 자체는 세워진지 좀 오래되서 학교 구석구석에 숨겨지고 낡은 풍경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것들 찾아보는 재미가 좋았다. 볕이 잘 안들게 지어져서 습하고 냄새나고 어두운 공간들이 많았는데 그런 곳을 친구들과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었다. 아주 오래된 졸업 앨범 속에 젊은 선생님들 사진, 낡디 낡은 은주전자, 밥상, 냄새나고 쾨쾨한 공간, 그런것들이 나는 좋았다. 그때 친했던 친구 중 한명은 이제 연락이 안되지만 보고싶은 친구도 있긴 하고..
하여튼 이렇게 어찌저찌 입시학원을 거쳐서 대학에 입학 한 친구들이 자기가 다니는 학교는 아무것도 아닌 양, 엄마 아빠가 제발 졸업만 해달라는 이야기를 한다거나 .. 아니면 어쩌다 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왜 왔는지 고민 하다가 힘겹게 다니는 친구들을 몇 번 보았다. 사실 나는..집에서 독립을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을 오는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졸업을 했다. 학교에는 온통 미숙한 애들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 학교를 졸업함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게 엄청나게 많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누렸다고 느낀 것도 많았다. 학교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도서관이 있었고, 공기가 잘 안통해서 잠이 솔솔 오는 열람실도 있었고, 담배를 필 수도 있었고, 자판기 음료수가 바깥보다 훨씬 쌌고, 멀미실 가서 디비디를 빌려 볼 수도 있었으며 책을 사다달라고 하면 도서관에선 해외 도록도 군말 없이 사 주었다.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책들 사이에 뒤덮여 있을 수 있는 도서관이 가까운 발치에 있었고, 각종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아서 쓸 수 있었으며 배가 토실토실한 꿩이 걸어다니는 어설픈 녹지도 있었다. 이 학교가 아니었으면 나는 각종 단체들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거고, 비정규직 서비스노동자의 삶도 고민해볼 수 없었을거고, 세상에는 각종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것도 몰랐을거고, 수많은 무료 강연도 들어볼 수 없었을거고, 오만가지 생각을 모아서 책으로 펴낼 수 있다는 생각도 못했을거고, 생협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을거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학관 건물에 거대 플랑을 걸 생각도 못했을거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모여서 세미나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겠지. 다른 나라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되어서 그 학교 학생인 양 공부할 수도 있었다. 물론 다 학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섭렵하고 가능하다는 것을 20대 초반에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연치 않게...그런 수도 없는 기회들을 잡을 수 있었던거다. 늦은 밤의 한가한 학교 풍경을 사랑했다. 중앙도서관의 오래된 책들이 내는 곰팡이냄새를 사랑했다. 고개를 한껏 쳐들거나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처박아도 끝없이 책이 꽂혀 있는 열람실을 사랑했다. 학교를 여전히 다니지만 지금도 그런 풍경을 사랑한다.
자신이 미워하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은 어쩌면 굉장히 감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늙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