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stri.destride 2013. 9. 29. 23:14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저자
서경식 지음
출판사
창비 | 2006-12-01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쁘리모 레비의 삶과 죽음을 살펴보는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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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씨 책은 항상 밑줄 치는 구절이 다른 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싸우는 대신에 또는 어떻게 하면 저항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대신에, 친구나 친척의 죽음을 바라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다"고 진술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누군가 죽으면 이제야 그 사람이 완전히 어깨의 짐을 벗었구나 하고 쾌활하게 생각하"곤 한다. 결국에는 "자신도 얼마나마 어깨의 짐을 벗을 수 있길 원하게 되고, 그래서 실제로 자살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 표면상의 쾌활함과는 정반대로 그들은 항상 자신에 대한 절망감과 싸운다. 그리고 결국 일종의 자기 본위로 죽음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30


사물을 생각할 수 있는 인간에게 그 무엇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치욕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모든 독단, 증명 없는 단언, 유무를 대답할 수 없는 명령에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가? (철, 주기율)

쁘리모 레비에게는 화학과 물리학이 파시즘에 대한 대항물이었다. 그것은 '명료하며 하나하나가 증명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60


본래 예수도 당시의 '유대인'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종교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미신적인 적의가 나찌식의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전통적인 종교 공동체의 성원을 가리키는 '유대인'이라는 말이 '인종'으로서의 '유대인'이라는 망상으로 바뀔 때, 유대인의 '절멸'이라는 프로젝트가 실행 가능하게 된 것이다. 69


이 사람 저 사람 어느새 줄줄이 떠오르는 추억이 정말 두서없다. 비참하며 골계적이고, 또 놀랄 정도로 끈질기면서도 의외로 여린 내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 마음 속에 되살아나는 정경은 모두 '막연한 적의와 조소의 장벽'에 갇힌 소수파만의 비굴함과 정반대의 오기 그리고 자포자기한 대소로 가득차 있다. 거기에는 언제나 유랑과 고향 상실의 비애가 뒤엉켜 있다. 77


이름의 박탈은 인간에게서 인격을 빼앗고 인간을 '사물'로 취급하기 위해 필수적인 절차다. 지배자는 항상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나찌 독일만의 지혜가 아니다. 지금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많은 나라의 교도소에서 통상적으로 수감자를 이름이 아니라 수인번호로만 부른다. 115


패배하는 것은 가장 간단한 일이다. 주어진 명령을 모두 실행하고, 배급만 먹으며, 수용소의 규칙이나 노동규율을 지키면 그만이다. 경험에 비춰보아 이렇게 하면 잘해야 3개월밖에 버틸 수 없다. 가스실로 가는 이슬람교도는 모두 같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가 없다. 강이 바다로 흐르듯 그들은 언덕 아래까지 자연스럽게 굴러 떨어진다.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 123


전후 서독에서는 나찌의 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약 9만 1천명이 조사 받고, 그중에서 6479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패전되고 겨우 10년이 지난 1955년에 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는 자의 수는 4백 명 이하로 감소했다. 경제계 지도자들도 대부분 원래의 지위로 복귀했다. 나찌에 협력한 공무원도 퇴직하자 연금을 전액 지급받았다. 나찌 시대의 재판관은 그대로 직책을 유지했다. 제3제국 내무부의 고급관료 한스 글로프케는 1953년 서독 아데나우어 정권의 차관이 되었다. 글로프케는 과거에 '아리아화'정책에 종사했으며, 제국 내의 유대인 전원에게 그들의 미들네임을 남자는 '이스라엘', 여자는 '사라'라고 짓도록 강요한 인물이었다. 125-6


'유대인'이란 무엇인가? 그가 '유대인'임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148


인생에서 목적을 가지는 것은 죽음에 대한 최선의 방어다. 그리고 그것은 수용소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162


일단 '불순물'을 분류하고 배척한 전력이 있는 사회가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의 아이덴티티가 근거한 서양문명은 나찌즘이라는 괴물을 낳아 자기 붕괴에 임박해있었다. '저편'에서 살아 돌아온 그의 눈에는 '이편'의 세계에서 한없이 진행되는 수복 불능의 균열이 잘 보였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 광경은 아프도록 신경을 건드리며 그를 한없이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172


우리 생존자들은 진정한 증인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사람의 회상을 읽고 자기 자신의 회상을 세월이 지나 읽는 사이에 조금씩 의식하게 된 어색한 생각이다. 우리는 극히 적을 뿐만 아니라 이례적인 소수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눈속임이나 요령 혹은 행운에 의해서 심연의 바닥까지 가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다. 그 깊숙한 곳에 빠져 메두사를 보고 만 자는 이미 증언하기 위해 돌아올 수 없었다. 혹 귀환했더라도 아무 말도 없었던 것이다. 178


그들은 대개 자신을 휴머니스트이며 평화 애호가라고 굳게 믿고 있다. 서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면, 한국에서 여행한 적이 있다는 둥 친한 친구 중 '재일(조선인)'이 있다는 둥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은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둥 자신은 '재일일본인'이라는 둥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좀 있으면 '도대체 언제까지 사죄하면 되는 걸까요?'라는 흔한 질문을 슬쩍 던져본다. 그리고 이쪽이 무엇인가 말하려 하기 전에 지금은 '국제화'시대이기 때문에 서로 '미래지향'적으로 '공생'해가지 않으면 안된다며 공소한 키워드를 늘어놓는다. 207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지 20년 이상이 지ㅏㄴ 유령처럼 나타난 뮐러, 정직하고 무기력한 평균적인 독일인인 그는 '과거의 극복'을 말하는 한편, I.G. 파르벤을 변호하고 유대인이 학살된 사실은 "몰랐다"고 한다. 부나에 있을 때조차 유대인인 레비에게 '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느냐?'고 물은 인물이었다. 말살의 위협에 노출된 강제수용소의 수인이 매일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측의 사람에게 자신이 왜 불안한지 설명하기를 요구받은 것이다. 227 


장 아메리나 엘리 비젤의 경우와는 다르게, 생가로 돌아와 가족과 친구 들에게서 따뜻한 환영을 받은 쁘리모 레비의 경우는 지극히 예외적인 행운이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건대 사회가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된다는 것에 그는 어색한 느낌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불안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 

쁘리모 레비의 인생 중 '저편'에서의 2년 남짓한 기간은 절대적인 '단절의 경험'이라고 할만했다. '인간'사회가 결정적으로 금이가고있음을 그는 알아차린 것이다. '저편'에서 그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리고 그것은 언제든지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데도, 왜 '이편'에서는 만사가 그대로 계속되는 것일까? 240


훗날 보고할 수 있게 고통을 견디자. 이것은 문학의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고, 가장 의심스러운 명제 중 하나다. 파이아끼아 사람들 앞에서 눈물짓는 오디쎼우스는 그의 불행이 후세 사람들에게 이야기의 소재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그의 불행이 미래의 인간에게는 노래가 된다. 살해된 자들의 운명을 훗날 이야기하기 위해 살아남아야한다는 것이다. (중략) 타자에게 알리기 위해, 또 고뇌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고뇌, 고문, 존엄의 상실을 견디는 것이다. 이같은 문학의 핵심적이고 유화적ㅇ니 양식이 그로테스크한 오해라는 것, 바로 그것이 이딸리아 태생의 유대인 쁘리모 레비의 연대기 안에 표현되어 있다. - 프랑크 시르마허, 누구나 카인이다. 



"우리의 운명을 당신들을 위한 경고로 삼아라"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