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저자
- 위화, 위화 저 / 김태성 역 지음
- 출판사
- 문학동네 | 2013-03-06 출간
- 카테고리
- 시/에세이
- 책소개
- 세계가 사랑하는 소설가 위화가 그려낸 현대 중국의 열 가지 풍경...
단순한 시대에서 복잡한 시대로, 적과 우리가 확실하던 시대에서 모호한 시대로, 정치의 시대에서 경제의 시대로. 그런 면에서 보자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흐름을 타지 않았나 싶다. 심리적 거리가 엄청나게 먼 나라였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구나 싶다가도, 치과의사와 문화관 직원의 월급이 똑같고, 혁명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사회적 의미의 차이, 산채나 홀유라는 단어의 의미, 홍위병들의 모습 등을 보면 또 한국사회랑 엄청 다르구나 싶어서 놀라기도 하고..
중국 사회를 열 개의 키워드로 읽어낸다는건 작가의 말마따나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열 개의 키워드로 중국 사회의 사십 여년의 세월을 풀어낸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작가의 문학에 대한 입장이나, 작가의 문학 편력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중국 사회를 읽어내는 글이라 자칫 딱딱해 질 수 있지만 생동감이 살아있는 문체와 서사의 존재로 인해 큰 어려움 없이 읽힌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그 비판 아래에서 중국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말할 수 있고 그러한 비판을 손쉽게 가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을 수 있는 드문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글 아닐까 싶었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단단하고 침착하게 살아가는 모습.
나는 간단명료한 작업을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생활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일상생활은 평범하고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삼라만상을 담고 있다. 일상생활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풍부하고 넉넉하다. 정치와 역사, 경제, 사회, 문화, 기억, 감정, 욕망, 사삿일 등이 모두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일상생활은 광활한 숲과 같다. 중국의 속담에서 말하는 것처럼 숲이 크면 어떤 새든 다 그 속에 사는 법이다. 18
바로 톈안문 사건이 중국인들의 정치적 열정이 한차례 집중되어 폭발한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문화대혁명 이래로 누적되어온 정치적 열정이 마침내 깨끗이 발산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뒤로는 부에 대한 열정이 이러한 정치적 열정을 대신했고,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돈을 버는데 집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1990년대의 경제적 번영이 찾아왔다고 할 수 있다. 27
내가 이 단어를 거짓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만났다고 할 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어학 또는 사회학, 또는 인류학적인 의미에서의 만남이 아니다. 그건 인생의 경험속에서 얻은 진실한 만남, 모든 이론과 정의를 제거하고 난 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만남이었다. 37
이전에 쓴 글 말미에서 나는 나의 독서 이력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 작품의 옷깃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 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4
사실 그런 시대에는 한 개인의 운명을 결코 자기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정치 상황의 파도에 따라 흔들렸고 자기 앞길에 행운이 기다리고 있는지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124
사회형태의 각도에서 볼 때, 문화대혁명 시기는 아주 단순한 시대였던 데 비해 오늘날은 대단히 혼란스럽고 복잡한 시대이다. 마오쩌둥이 말한 "우리는 적이 반대하는 것을 옹호해야 하고 적이 옹호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라는 한 마디로 문화대혁명 시대의 기본적인 특징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기는 이처럼 흑백이 분명한 시대였다. 적은 영원히 착오를 범하고 우리는 영원히 정확하다는 것이 그 시대의 인식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적이 정확할 때가 있고 우리도 틀릴 때가 있지 않을까 하고 물을 수 없었다. 마오쩌둥 이후에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훌륭한 고양이다"라고 한 덩샤오핑의 말이 오늘날 변화한 시대의 기본적 특징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덩샤오핑의 이 한마디는 마오쩌둥의 사회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중국 사회에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온 사실, 즉 잘못된 것과 정확한 것은 항상 같은 사물 안에 존재하며 서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동시에 이 한마디는 중국의 경제발전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논쟁을 종식시켜주기도 했다. 203
문화대혁명 시기에 우리는 누구든지 이 말을 유창하게 외워야 했다. 마오쩌둥은 이렇게 말했다.
"혁명은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거나 자수를 놓는 것도 아니다. 혁명은 그렇게 우아하고 조용하며 그렇게 문질빈빈 하고 그렇게 공경스럽고 겸손한 것이 아니다. 혁명은 폭동이다. 한 계급이 한 계급을 전복하는 폭력행동이다." 244
극도로 격렬했던 중국의 정치운동에서 혁명과 반혁명 사이의 거리는 한 걸음밖에 되지 않았다. 민간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샤오빙을 뒤집는 것처럼 역전하기 쉬운 것이 혁명과 반혁명이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화덕의 벽에 달라붙은 샤오빙에 지나지 않아 운명의 손에 얼마든지 뒤집혔다. 어제는 혁명가였다가 오늘은 반혁명분자가 되기 십상이었다. 또한 오늘은 반혁명분자였다가 내일이면 혁명가로 변할 수도 있었다. 274
거리의 행인들은 홍보서를 손에 들고서 영문도 모른 채 서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아주 엄숙한 태도로 그의 행위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당시의 풍습이었다. 무슨일에서든 가장 먼저 자신의 혁명적 입장을 밝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진지하게 반혁명분자로 몰아가지 않았다. 모두 마음속으로는 그를 아주 착실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누구도 그에 대해 비판투쟁을 벌이지 않았다. 2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