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한승태, 시대의 창
한구석에 자리잡은 여성혐오를 '재미'라는 이름으로 조심스레 조금씩 흘려보내는 책이라 읽는 내내 썩 좋지는 않았다. 누군가 추천해 준 책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 읽다가 그만뒀을 것이다. 누군가의 뒤틀림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건 썩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지나간 연인을 회상하며 '펑퍼짐한 아줌마가 되어있길'이라고 말하거나 '땅딸막한 육사생도와 만나며 나를 버린 그녀'라고 얘기하는 대목, 여성 손님이나 점잖은 노부부처럼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줄 수는 없어보이는 사람들에게 감정노동자로써 자신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대목을 통해 감정노동자들의 처지가 얼마나 열악한지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정말로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는, 뒤틀린 자신을 여과없이 내보이는 르포르타주 문학이라는 점에서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나 한겨레기자들의 <4천원 인생>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는 책이라고는 생각할 수 있겠다. 작가는 어쩌면 굉장히 외로워하는 중에 이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책 어딘가에 쓰여져 있던 자신이 이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자신의 날개 아래에 자신을 품으려 했던 아저씨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구절에서 더욱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작가 자신의 외롭고 기댈 곳이 필요한 심정은 나타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딘가 모르게 '쿨'한척을 하지만 쿨하기보단 빗나간 마음이 더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자신은 공장에서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환원하는 아저씨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자신이 어떤 여자의 다리를 넋놓고 보다가 주유시 실수를 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책에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저여자랑 섹스하고 싶다.'라고 얘기하는 것과 혼자 다른 여자 다리를 바라보며 넋을 잃는 행위는 저자에겐 의미가 다른 행위일수도 있겠다.
내가 책을 생각보다 낭만적인 이유-위로를 받는다거나 문득 깨우치는 순간을 얻는다거나-로 읽고 있었단 사실을 이제사 깨달았다. 모르겠다. 저자가 이 글을 얼마나 끈덕지게 고쳐가며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글 자체가 르포르타주 문학의 '생생함'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기보다는 정말 말 그대로 '날것'의 느낌이며 작가 자신의 뒤틀린 마음이 조금은 섬뜩했다. 작가에게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는 생각을 한다.
저자의 일터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도 젊고 하니 최대한 빨리 이곳을 떠나라. 서울로 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저자는 어떤 기분으로 이 말을 계속 옮겨 적었을까.
" 니 뭔 말인지 알긋제? 아무리 파도가 세도 뱃머리로 부딪치면 배 안 뒤집힌다." 39
지금도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실 중 하나는 그렇게 정 많고 친절한 아저씨들이 정작 자기 배 막내의 고충 앞에서는 냉담했다는 거다. 어째서 사람들은 가장 나약한 부류에게 가장 힘든 일을 떠넘기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86
나는 그들을 판단하고 싶지 않다. 조롱을 감수하면서 맞지 않는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내가 보기엔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빼뚤어지게 만든다. 내가 경멸하는 사람은 황소 심줄같은 끈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참고 참아서 끝내는 어디선가 한자리 꿰차는 사람들. 그러니 너희들도 인생의 절반을 무의미한 일을 하며 살라고 권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중도포기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제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 해야겠다. 참을성 좋은 사람들은 체면이니, 부모니, 정체ㅅ를 알 수 없는 명분에 충성을 다하는데,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건 여지없이 이런 부류다. 234
마치 남자들이 소싯적에 혼자서 몇 명이나 되는 놈을 때려눕혔다는 (대단히 의심스러운) 무용담을 늘어놓듯, 여자들은 혼자서 몇 개나 되는 집안일을 때려눕혔는지 경쟁적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당연히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믿음이 가고 감동적이었다. 여자들의 강함은 믿는 힘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뭐가 됐든 한 가지씩 고집스럽게 또 절실하게 믿었다. 예수든 부처든 아들이든 딸이든 남편이든. 아들딸을 믿는 쪽이 절대 다수였고 남편을 믿는 사람은 희귀했다. 371-2
결국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인건비를 줄이는 것. 나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의 근원이 이런 모습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람에게 들어가는 돈을 줄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 말이다. 383
한 달도 안되어 나는 공장일의 단순함에 질려버렸다. 일을 하면 할수록 정신에 모욕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이 일을 견디기 위해선 계획도 버리고 생각도 버리고 정신적 무소유의 경지에 다다라야 했다. 이런 작업 뒤에야말로 창조적인 문화생활이 절실했지만 앞서 밝혔듯이 근방에서 문명의 흔적은 도로와 논뿐이었다. 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