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김은국

stri.destride 2013. 1. 10. 02:15



순교자

저자
김은국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06-2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남북의 이념 대립이 만들어낸 열두 명의 순교자!한국계 최초로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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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죽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데 ....... (특히 전쟁'중'을 다루는 소설이면) 난 이런 전개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갑자기 죽는게 말이 안되서가 아니라 아까전까지만 해도 살아 숨쉬던 사람들이 갑자기 죽어버리는게 너무 황당하고 슬퍼서. 

김은국은 1955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2009년에 생을 마감했는데, 64년-휴전 후 거의 10년-에 쓴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계로서는 최초라는데.. 한국인이 6·25전쟁을 배경으로 삼아 영어로 써서 미국에서 발표한 소설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서 읽고 있다니. 어딘가 낯설면서도 친근한 묘한 거리감은 이곳에서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의 대부분은 평양인 것도 낯설고, 목사가 두루마기를 입고 있다는 대목이 나오는 것도 낯설고, 그런데 등장인물들은 한국 현대소설에서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나오는 사람들이 참 침착하고 그래도 따뜻한 사람들인걸 보면 낯설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접한 이 전쟁을 다룬 소설들은 전쟁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비참한 면이 주로  부각되고는 했는데(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등) 이 소설은 전쟁에 휘말린 국군 병사들과 목사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소설 속 신 목사의 설교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고, 기독교를 어떻게든 계속 접했던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덕에 기독교신앙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 얘기가 없는게 맘에 드네..? 전쟁, 신앙, 진실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 사람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유, 그런 것들. 신앙에 대한 얘기가 심층적으로 나오고 .. 그 신앙이 결국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누군가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고 그 사람들이 누군가를 구원한다는 설정이 약간 나에게는 낯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에 마음이 아픈건 거의 처음이지 않았나 싶다..내가 기독교인의 말에 이렇게나 마음이 동하다니..


번역을 정말 꼼꼼하고 애정들여서 했다는 것이 글 전체에서 담뿍 배어난다. 같은 말을 반복 해도 말 끝을 미묘하게 바꾼다든가 하는 식으로? 역자는 64년도에 처음 번역했다가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재출간 하면서 다시금 번역하는 마음으로 다듬다가 부끄러운 대목이 많아서 깜짝깜짝 놀랐다는데... 인사치레로 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담뿍 배어나는, 매끈한 번역 덕에 더 잘 읽힐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하도 소설책만 읽어제껴대니까 그렇게 소설책을 많이 읽다 보면 머리가 아프지 않냐는 소리부터 이야기를 하도 읽어서 이야기책 한권 쓰겠다는 얘기까지 듣는다. 그러나 읽을게 너무 많은걸요! 


이미 말했지, 난 자네가 속으로 무얼 믿고 무얼 신봉하건 전혀 상관하지 않네. 허나 자네가 그 군복을 차려입고서 사람들에게 한다는 얘기가 안 그래도 비참한 사람들을 더 비참하게 하는 것들뿐이라면 문젠 곤란해. 자네의 국가가 최하고 있는 입장을 거스르면서 말일세. 사람들이 속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그들에게 떠들어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나? 내 말 이해가 돼? 174쪽


기독교 특유의 것이 하나 있죠, 대령님. 나는 말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죽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믿는 신의 아들이었고요. 

참 이상한 생각 아닌가, 희생이니 순교니 하는 것 말일세. 193쪽


교인들에게 필요한 건 그들에게 위안과 확신을 줄 작고 멋진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의미 있게 하고 고난을 값진 것으로 해줄 그 어떤 것 아니겠나? 어디서 읽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데, 자네는 기억나나? '세계가 무의미하고 부조리하지 않다는 사실보다는 세계가 무의미한 상태에 있다는 데 더 큰 진리가 있다'는 얘기 말야. 그 말이 지난 며칠처럼 내게 큰 의미를 가진 적은 없었어. 그래, 그 교인들은 이 무의미한 세계에서 그들의 생을 지속시키는 그 무언가를 갖고 있어. 한데 우리에겐 그게 없지. 그들이 가진 그것으 우리가 꼭 동화라고 불러야 할게 뭐야? 

이해는 하지만 믿을 수는 없으니까. 228-9쪽


희망이라는 환상을 준단 말입니까? 무덤 이후의, 죽음 이후에 대한 환상을 주란 말입니까?

그렇소! 그들은 인간이기 때문이오. 절망은 이 피곤한 생의 질병이오. 무의미한 고난으로 가득 찬 이 삶의 질병입니다. 우린 절망과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린 그 절망을 때려 부수어 그것이 인간의 삶을 타락시키고 인간을 단순한 겁쟁이로 쪼그라뜨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목사님은요? 당신의 절망은 어떡하고 말입니까?

그건 나 자신의 십자가요. 그 십자가는 나 혼자서 림어져야 하오. 

나는 그의 떨리는 두 손을 잡았다. 용서하십시오.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용서할 건 아무것도 없소. 당신은 알고 있기 떼문에, 당신도 알고 있게 때문에, 당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있소. 

다른 사람들은?

많은 이들이 다 십자가를 질 수 있는건 아니잖소? 그는 문득 부드러운 어조를 되찾으며 말했다. 그들은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들이오. 우린 그들에게 그들의 그리스도와 그들의 유다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육체의 부활도?

그렇소, 육체의 부활도!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도?

그렇소, 그 천국도!

정의는?

물론이오. 정의, 얼마나 그리운 이름이오? 그렇소. 정의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궁극적인 정의를 주어야 하오. 

목사님은?

계속 괴로워해야겠지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얼마 동안이나? 얼마 동안이나 괴로워해야 하는 겁니까?

죽을 때까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없을 때까지!

(중략)

용기를 가지시오, 대위. 우린 절망에 대항해서 희망을 가져야 하오. 절망에 맞서서 계속 희망해야 하오. 우린 인간이기 때문이오. 255-257쪽


나를 도와주시오! 어디에 가 있건 내 일을 도와주시오. 

나는 그와 그렇게 작별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신 목사가 다시 소곤거리듯 말했다. 인간을 사랑하시오, 대위. 그들을 사랑해주시오! 용기를 갖고 십자가를 지시오. 절망과 싸우고 인간을 사랑하고 이 유한한 인간을 동정해줄 용기를 가지시오. 2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