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

stri.destride 2013. 1. 2. 04:23





예전에 읽다가 나가떨어진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한트케의 책은 차분한 호흡흐로 천천히 짚어나간다는 느낌으로 읽으면 '오오'하는 느낌으로 읽게 된다 

한트케는 내가 살아가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고 있는 것들을 정확하게 잡아내니까. 

급하게 읽으려 하면..아니돼


경악의 순간들은 언제나 아주 잠깐이고, 그 잠깐이란 시간은 경악의 순간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비현실의 감정들이 치미는 순간이며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다시 모른체해버릴 순간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게 되면, 마치 지금 막 그에게 불손하게 굴기나 한 것 처럼 이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11쪽


하나의 유형에 들어감으로써 개인은 부끄럽게 여겼던 외로움과 고독감으로부터 벗어났고 스스로를 망각했으며 비록 잠깐이긴 하지만 때로는 당당하고 떳떳한 존재가 되었다. 36-37쪽


<가난>이라는 단어는 아름답고, 웬지 고귀한 단어 같았다. 그 단어를 보면 마치 옛 교과서에서 풍기는 이미지들, 즉 가난하지만 청결하다는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가난한 사람들은 청결하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었다. 사회적 진보는 청결 교육에 있었다. 빈곤한 사람들이 일단 청결해지면 <가난>이라는 것은 명예 훈장이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궁핍한 사람들의 눈에도 궁핍에서 오는 불결함은 다른 나라에 사는 하층민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었다. 50-51쪽


사람들이 형식 없는 궁핍에 더 편안함을 느꼈더라면 아마 최소의 프롤레타리아적 자의식에라도 도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역에 프롤레타리아는 한 명도 없었다. 있다고 해봐야 기껏 누더기를 걸친 날품팔이꾼이었다.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도 없었다. 완전히 폭삭 망한 사람들은 창피해 했을 뿐이다. 가난은 그야 말로 치욕이었다. 53쪽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녀에게 기대야 할 필요가 점점 많아진다고 느낀 남편도 사회당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녀는 정치가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부터 결코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호의에서 자신의 한 표를 던졌던 것이다. <사회당은 노동자를 위해 더 많이 일하지. 그러나 그녀 자신은 노동자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60쪽


지겨운 세상의 폴카 - WELTVERDRUSS-POLKA


아이 이야기

어른에게서는 절망이 여러 방식으로 감추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아잉게서는 어느 경우에나 절망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희망을 잃은 아이를 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156-157쪽


소위 말하는 2개 국어 사용이란 것이 흔히 말하듯 재산이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 고통스러운 괴리감을 낳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집에서는 결코 외국어를 쓰지 않았고 - 기껏해야 장난칠 때에나 썼다 - 학교에서는 하루 종일 집에서 쓰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학교 밖에서 토박이 주민들과 어울릴 때면 남자는 곧잘 자기 아이인 줄 못 알아보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다른 언어를 쓸 때는 다른 목소리를  냈고, 다른 표정을 지었으며 다른 태돌르 취했다. 그러니까 낯선 어법 때문에 완전히 낯선 태도가 뒤따라왔던 것이었다. 한편으론 흉내를 내고 지나친 기교를 부리는 듯 했고 다른 한편으론 꼭두각시 같았다. 그렇게 하는 데 더 이사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을 잊은듯 했다(그것은 어쩌면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행동이어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아이가 집에 돌아와 원래 쓰던 말을 쓸 때면 언제나 긴장을 푸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상태에서 아이는 다시금 즐겁게 조잘댔고 더 편안한 몸가짐을 했으며 눈길도 더 침착하게 돌렸다. 164쪽 



소망없는불행은 자살한 한트케 본인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고, 아이 이야기는 자신이 잠시 맡아 기르던 첫 부인과 자신 사이의 아이에 대한 기록이다. 언제나 한발짝 정도 사건에서 떨어져서 바라보겠다는 의도로 보이는 한트케의 글쓰기를 나는 좋아한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면서 모든 사건에서 한 발짝 정도 떨어져서 바라보는 삶의 태도를 지향하고 싶어함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