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 김진숙
의무감에 쫓겨 읽어서 그런지 덤덤하게 읽었는데
사실 텍스트 자체를 덤덤하게 읽는다는거 자체가 가능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보다 나은 삶이 있다는 진실이 기뻤고, 그 진실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24년 뿌리 깊은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고 그 일ㄹ로 대공분실 세 번, 부서 이동 두 번, 해고, 출근 투쟁, 무자비하고 끝이 없던 폭행, 수배 5년, 두 번의 감옥. 지금까지 나를 버텨 왔던 건 그때의 자책과 용기가 아니었나 싶다 49쪽
그냥저냥 길들여지는 게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임을 체득한 무력하기 짝이 없던 열아홉 살. 요즘 십대들이 무섭다지만 그때 십대들이 더 무서웠다. 먹고사는 일에 목숨 걸었던 그 무서운 십대들이 결국은 독재를 유지시켰던 균주였고 지금도 먹고살게만 해준다면 인권이나 환경이나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건 삽시간에 나발이 되고 마니까. 먹고살기 위해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넘어간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죽고 싶도록 부끄러웠으나 내가 무슨 힘이 있냐는 체념과 타협한 일은 오죽이나 많았겠는가. 53쪽
죽은 사람을 묻어 줄 용기나 결단이 없다면 죽은 시체의 미숫가루를 훔쳐 목숨을 부지하는 전쟁같은 삶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148쪽
정규직의 적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자본입니다. 윌가 맞장을 떠야 할 건 약자가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사시미 칼을 든 깡패입니다. 자본의 발밑에 짓밟혀 파들파들 떨고 있는 민들레를 하넙ㄴ 더 짓밟는게 아니라 그 발을 치워 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도 너희도 시험 쳐서 소나무가 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민들레에게 숨 쉬고 씨앗 흩날릴 영토와 햇볕을 나눠줘야 합니다. 민들레가 죽어가는 땅에선 어떤 나무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154쪽
걸핏하면 위로를 해야 할 만큼 그 무수한 국군장병 아저씨들을 내가 군대로 보낸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어린 내가 추운 날이거나 더우 나링거나 낮이거나 밤이거나 불철주야 나라를 지켜 주시는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오늘도 또한 내일도 사시사철 불구하고 용맹하게 북한괴뢰도당으로부터 나라를 잘 지켜 주십사는 고무와 오늘밤도우리 국민은 아저씨들 덕분에 발 뻗고 잔다는 사생활 보고를 수시로 해야 했소 숱하게 썼던 위문편지 중에, 근혜 씨 엄마 돌아가시고 슬픔에 빠진 영식, 영애 분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숙제로 내 준 위문편지를 쓴 건 압권일듯 하오. 200-201쪽
헐 우리 고등학교도 시켰던건데
다만 학교 내 비정규직, 나아가 보육 교사나 학습지 교사를 바라보는 눈길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만큼 따사로웠으면 하는게 바람이다. 보조라는 이름부터 굴종이 전제된, 그러나 그들도 간절히 지니고 싶을 자긍심과 자랑을 나누는 일 214쪽
노동자 정체성이라는것은 .... 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