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까닭에, 류은숙

stri.destride 2012. 12. 16. 00:53




이 책 제목이 그렇게나 안외워지고 

마침 학교에 있다그래서 빌리러갔더니 누가 열람중인지 찾을수가 없고 해서

그냥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샀다

근데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좀 더 천천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배려'때문에 답답했던 이유를 내가 드디어 이 책을 읽고 알았어..아이고 이렇게 기쁠데가


류은숙선생님 강연은 예전에 사랑방 신입활동가 교육중에 '반차별 강의'가 있어서, 반차별팀들 가면 좋겠다 그래서 다녀온 기억이 있다. 손바닥만한 다이어리에 이렇게나 빼곡하게 적어놨었네. 무려 세 쪽을. 


"우리는 다시는 인간에게 값어치를 매겨서는 안된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만으로도 존엄하다."

"찌꺼기로 남는 이들에게 요원한 해방, 계속해서 찌꺼기로 남게 되는 사람들이 나타날텐데, 그 사람들을 위한 운동이 인권운동" 

이런 요지의 강연이었는데... 선거망하고 내가 "으 이거다!"하고 만족했던 분야가 아마 '인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권이라는 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권이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참 멋있어보이고 맘에 들고 좋아서... 아직도 인권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권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몰라서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이 '인권활동가'였으면 좋겠다.

너와 내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연결된 존재라는 인식. 그리고 연대.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연대를 "상호번역성"이고 "우리성의 감각" "타인을 향한 도덕의 환성이자 자신의 생존조건" 같은 미려한 수사로 가득 찬 문장으로나 만나게 된다. 가끔은 '연대가 무슨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같은 후식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략) 연대는 그것이 이야기되는 다양한 맥락만큼이나 동경, 지부함, 부채감 등 다양한 감정을 자극한다. p22-23


일상에서는 녹색과 유기농을 강조하는 제품 쪽에 손을 가져가면서, 정작 농부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추수 때마다 소위 '아스팔트 농사'지으러 왔다고 하면서, 국가의 농업 정책에 항의하러 상경한 농민 시위는 짜증스러워한다. 한국 기업이 원전을 수출했다거나 대형 댐 공사를 수주했다는 뉴스에는 환호하면서, 불도저가 밀어낼 타국의 취약 지역에서 벌어질 생태 위기나 거기에 항의하는 주민을 강제 퇴거시키려 동원된 폭력에는 관심이 없다. 치료약이 없거나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먼 나라의 아이를 위해서, 요금을 못 내 수돗물과 전기가 끊긴 채 생활한다는 한국의 가난한 아이를 위해서 ARS모금 번호를 누르지만, 기아와 질병, 화재와 성폭력 등의 사건사고가 뭣 때문에 그 아이들에게 유독 많이 생기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 하지 않는다. P56


노동력을 팔아서 돈으로 바꾸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지금 세상의 철칙이고,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기 위해서 다들 아등바등 한다. p72

우선순위를 두기는 하겠지만, 복지 국가는 다양한 공감을 묶어 세워 빈곤과 장애로 인한 고통에 대해 공통의 울타리를 치고는 한다. 굳이 말을 붙이자면 '공감의 표준화'작업이다. 개인적인 감성적 공감을 평등한 사회적 권리에 대한 정치적 공감으로 변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개인의 나이나 성별, 출신 등에 개의치 않고 이러저러한 빈곤과 장애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져 강요된 고통이라고 확인하는 것이다. 장애 자체를 어쩌지는 못하지만 장애인의 이동을 가로막는 계단과 문턱은 사회가 만든 것이므로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개인의 선호를 떠나서 이런 권리와 의무를 지지하는 것을 개인적인 감성적 공감과 구분하여 정치적 공감이라 할 수 있다. p80


흔히 관용은 누군가를 너그러이 봐주는 태도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는 한다. 허나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성경 구절에 빗대어 보면, 관용은 헌 부대에 해당하는 기존의 틀에 구겨 넣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 위치를 고정해 놓고 그 위치에서 낮아 보이는 누군가를 고려하고 봐준다는 착각일 수가 있다. 그런 관계 틀에서는 '없는 셈 치고'의 관계를 맺게 된다. 반면에 봐주기가 아닌 적극적 관심으로 대체된 틀은 '네가 보여, 네 목소리가 들려!'라는 반응에서 시작된다. p103


연수 떄 만났던 사람들은 그 당시 세상을 가리켜 "20대 80"의 세상이라 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1대 99"를 말하고 있다. 20대 80이 1대 99로 변한 것은 돈과 권력이 더 소수에게 쏠렸으며 잊힌 세계가 더 많이 늘었다는 것을 증언해준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99가 공유하는 기억이 많아진다면 그 세계가 잊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같이 할 것인가의 목록이 많아질 수 있다. p139


그런데 세상에는 '자기'가 되지 못하고 온전한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기에 인권에서의 개인주의는 개인이 되지 못한 사람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게 하겠다는 야심을 품을수밖에 없다. 어느 한 사람도 도매금으로 떨이할 수 없는 존재임을 지켜내려는 당돌함이다. p158


적절한 대변에 실패하거나 한때 밀착했던 대변자와 분리되고 나면 남는 것은 대변을 자처하던 세력이다. 연대는 현재진행형이지만, 대변했던 일은 과거의 후일담이 된다. 후일담은 "우리는 안그랬다."는 설교가 되고, 후일담을 공유할 수 있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감정의 부흥회가 뜨거울 수록 그것을 보며 자신을 타자화하는 사람들의 냉각화가 동반된다. 후일담을 적극 경력화하는 세력은 기억을 사유화한다. p181


그런 시대에 많이 쓰인 말 가운데 하나가 '의식화'였다. 당국과 기득권 세력은 불순한 사상으로 오염되는 것을 의식화라고 지탄하며 색출하고 탄압하는 데 열을 올렸다. 반면에 각성한 정체성으로 뭉쳤다고 하는 쪽에서 의식화의 의미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를 제대로 깨닫는 것이었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주어진 질서와 운명을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고쳐 나가는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말했다. 의식화된 민중은 더 이상 불쌍하고 가련한 희생자가 아니라 역사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연대의 주체에 대한 어느정도의 이상화가 있었고 비장미와 숭고함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런 사람들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같은 면이 적지 않았다. 당시에 소위 의식화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을 '일반'학우라 불렀다. (중략) '일반'이나 '이하'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의 고민은 사소하거나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럴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니 '좋은 시대'를 기다렸다가 하라고 했다.  p228


이주자, 장애인 등 사회적으로 불리하고 취약한 정체성이 연대를 촉발시키는 동기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촉발된 연대의 불꽃을 계속 태우려면 그 정체성 안에 갇히지 않고, 같은 문제로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이 만나서 공통의 문제에 영향을 끼치는 연대가 필요하다. p233


공통의 문제라고 인식하면 서로의 차이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내 기준, 사회적 통념에 따라 너를 바꾸라."고 강요한다면 들이받고 싸울 수 밖에 없다. 반면, "네가 어떠하든 난 상관없어. 나는 나대로 살 테니 너는 너대로 살아다."는 태도는 무관심이어서 변화를 위한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 하지만 "차이는 당연한거야. 나는 너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되고, 너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네가 되는 것잖아. 서로의 차이는 서로의 존재 조건이야. 그런데 네가 그런 차이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다면, 그건 나뿐 아니라 모두와 상관 있는 문제야. 그러니 같이 의논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찾아보자." 이렇다면 공통의 문제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함께하면서 다양한 길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 맘에는 안들지만 내가 너의 그 차이를 참아 내고 봐줄게"라는 태도이다. 연대에서 차이가 문제가 될 때는 흔히 관용이라 부르는 이 경우이다. 주류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대개 권리 존중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배려나 관용이라고 말하는 것을 즐긴다. (중략) 사회적 약자에 대해 참고 품어 주는 것조차 인색한 현실에서는 관용하는 태도가 절실하고 "그것만으로도 어디야"라고 반응하게 된다. 그런데 배려나 관용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연대로 여겨지지 않고 억울하다. 애초에 왜 내가 불리한 취급을 받게 된 것인지, 왜 내가 가진 차이가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그런데 묻고 따지기도 전에 "너의 차이를 배려하고 관용한다."고 해버리니 맥이 풀린다. 배려하고 관용하여 조용히 살자는데 "왜 그래야만 하나?"고 묻고 따지면 소란스럽다고 한다. p234


인권은 자유, 평화, 연대로 구성되는데, 수많은 자유와 평등의 외침 속에서 유독 '연대'만은 속절없이 잊혀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복원할 필요를 느꼈다. 인권은 "가장 절박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최후의 언어여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우리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시대 활동가들에게 도대체 연대가 무엇인지, 또한 어때야 하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100명을 대상으로 한 '연대에 관한 심층면접 조사'를 하면서 우리는 연대가 힘의 결집을 통해 물리적 성과를 가져오는 힘을 넘어 '혼자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또 다른 나와 만나는 과정임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문제를 함께 풀어 나가면서 내가 품어야 될 사람, 내가 더 알아야 할 사람"의 폭을 한층 넓히는 것, 그 속에서 내가 혼자서는 온전히 설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연대였다. p262-263